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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08/02/29 로쟈의 저공비행 중 한겨레에 실린 글 - 무엇을 위해 전봇대를 뽑는가
  2. 2008/02/29 남북 축구대결.
  3. 2008/02/29 깐느영화제 새우깡 광고
  4. 2008/02/29 우석훈. 여백과 행간의 의미
  5. 2008/02/28 주절거리기.
2008/02/29 21:56

로쟈의 저공비행 중 한겨레에 실린 글 - 무엇을 위해 전봇대를 뽑는가

한겨레21(08. 02. 28) 무엇을 위해 전봇대를 뽑는가






실용주의가 대세다. 너도나도 실용을 말하고 실용주의를 외친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말하는 대신에 ‘전봇대’를 뽑는다. 그리고 이게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의 첫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말 많았던 대통령 대신에 등장한 ‘일하는 대통령’의 새로운 정책기조, 그것이 실용주의다. 거꾸로 되짚으면 어즈버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실용’인 모양이다. 그런 생각에 눈길이 간 책이 윌리엄 제임스의 <실용주의>(아카넷 펴냄)다. 대세를 좇아가려는 공무원들이 앞다투어 읽어봄직한 책이지만 이건 또 ‘인문서’라 사정이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실용주의적 독서법은 아무래도 핵심을 먼저 파악하는 것 같아서 특히 ‘실용주의가 의미하는 것’이란 글을 먼저 읽었다. 그런데 이 문학적 필치의 철학자는 핵심만을 간추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에둘러 말한다. “철학적 문학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표현이 풍부하고 암시적”이라는 게 역자가 미리 일러준 것인데, 서두부터가 이런 식이다. “몇 년 전 산악지대에서 캠핑을 하던 중, 혼자 어슬렁거리다 돌아와보니 모두들 열띤 형이상학적 논쟁에 빠져 있었다. 논쟁의 실체는 나무둥치의 한쪽에 들러붙어 있는 다람쥐였다.”

어떤 상황인가? 나무둥치 한쪽에 다람쥐가 붙어 있고 반대편에는 사람이 서 있는데, 이 사람이 다람쥐를 보기 위해 나무를 돌면 다람쥐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바람에 다람쥐를 볼 수 없었다는 것. 여기서 논쟁이 된 형이상학적 문제는 이런 것이다. 과연 그 사람은 다람쥐를 도는 것인가 아니면 돌지 않는 것인가? 어느 쪽이 옳은지 판결을 요청받은 제임스의 대답은 간단했다. ‘돈다’고 할 때 실제로 우리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실용주의의 방법은 애당초 그것 없이는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형이상학적 논쟁들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어떻게 해결하는가? 개념들에 대한 논쟁이 일어날 경우에 실용주의는 그 각각의 실제 결과들을 추적하고 그 개념이 누군가에게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가를 따짐으로써 해결한다. 가령 두 가지 개념이 산출하는 결과들 사이에 아무런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면 두 개념은 실제로 같은 것이고 모든 논쟁은 쓸데없는 것이 된다. 그 ‘개념’이란 말을 ‘이념’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가령 다람쥐 대신에 덩샤오핑의 고양이를 떠올려보자. 그의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것 아닌가. ‘쥐를 잘 잡는다’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그 고양이가 ‘희다’거나 ‘검다’거나 하는 개념상의, 혹은 이념상의 차이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실용주의 철학이다(중국 사상계의 덩샤오핑이라 불리는 리쩌허우는 ‘실용이성’의 철학을 ‘밥 먹는 철학’이라고 부른다).

제임스는 덩샤오핑보다도 훨씬 노골적인 비유를 든다. 그가 보기에 어떤 개념이나 아이디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현금가치’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현금가치란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치를 말한다. 혹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가치다. 배고픈 이들이 밥을 먹게 해주거나 배 나온 이들이 살을 뺄 수 있게 해주는 아이디어 말이다.

이러한 실용주의를 제임스는 개인적으로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는 방식이라고 보았다.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실용주의적 종교론은 형이상학적 유신론이나 자연주의적 무신론과 대별된다. “신학적인 관념들이 구체적인 삶에 가치가 있다고 증명된다면, 유익하다는 의미에서 실용주의에게도 참이 될 것이다”라는 게 제임스의 입장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 신앙을 통해서 사람들이 절망을 극복하거나 소망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면, 그런 실제적인 결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적 신앙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다 맞는 말 아닌가? 단지 전봇대를 뽑고 쥐를 잡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인가란 형이상학적 질문에 덜미만 잡히지 않는다면 말이다.

08.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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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09:46

남북 축구대결.

남북 축구대결을 평양에서 보고 싶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진정한 화합의 모습을 기대한다.


  74년 월드컵 '저먼 더비'의 추억

최근 내달 평양에서 펼쳐질 예정인 축구 남북대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동아시아 대회에서 혜성과 같이 등장한 북한 정대세의 인기에다 북한이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에 반대하면서 더욱 그렇게 돼 가고 있는 국면이다.
 
  제3국이 아닌 평양에서 경기를 펼쳐야 이 경기의 의미가 더해질 수 있지만 현재로는 북한이 FIFA(국제축구연맹)의 결정을 받아 들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 때문에 김일성 경기장에서의 남북 축구 대결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개최지가 어디가 됐건 '코리언 더비'는 1974년 월드컵에서 펼쳐진 동서독 대결 이래 가장 축구 외적인 요소가 뉴스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경기다. 당시 동서독 축구 대결은 여러 면에서 얘깃거리가 많았다. 동서독의 상황과 지금 남북한의 상황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분명 74년의 '저먼 더비'는 앞으로 펼쳐질 '코리언 더비'의 영원한 닮은 꼴이다.
 
  72년 서독 뮌헨에서 열렸던 올림픽에서 동독은 20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13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서독을 제쳤다. 동독은 이 대회 개막식에서 최초로 국기와 국가를 앞세우며 등장했다. 주적인 서독을 적지에서 제압했다는 환희에 동독은 취해 있었다. 동방정책으로 유명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은 "동독 사람이 금메달을 따면 우리도 승리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동족"이라고 했지만 동독은 이 대회를 통해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데에 주력했다.
 
  2년 뒤 동독은 서독과 월드컵 본선의 조별예선에서 맞닥뜨렸다. 이미 동독과 서독은 다음 라운드 진출이 확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두 팀의 경기는 김 빠진 축구 경기가 아니었다.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던 두 팀 선수들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서독은 너무 조심스럽게 경기를 펼쳤다. 동독에서 코치생활을 하다 서독으로 건너간 헬무트 쇤 감독이 너무 이 경기의 승리에 집착한 면도 서독 선수들을 경직시키게 만들었다. 베켄바워는 코너킥을 준비하던 한 동독 선수에게 "내가 너 셔츠를 잡아당길까봐 걱정돼"라고 말하자 그 동독 선수는 "난 네가 그렇게 하지 못할까봐 걱정인데"라고 응수했다. 이처럼 동독 선수들이 심리적인 면에서 서독을 압도했다.
 
  동독 선수에게 한 방 먹은 베켄바워는 동료들에게 고함을 치며 독려했다. 서독은 경기 전까지 승리를 위해 똘똘 뭉쳐 있는 것 같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 와서는 자신을 위한 플레이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동독의 첫 골이자 결승골이 터졌다. 함부르크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공산당원 가운데 선발된 약 2000명의 동독팬만이 동독의 국기를 흔들고 있었다. 국제적 관심을 모았던 '저먼 더비'는 막을 내렸다.
 
  내심 축구만큼은 동독에 훨씬 앞서 있다고 자부하던 서독 축구계는 이날 패배로 충격에 빠졌다. 반면 동독 축구계는 신바람이 났다. 이미 올림픽에서 서독을 압도했던 동독은 축구에서마저 서독을 이기자 "스포츠로 우리가 독일을 통일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74년 월드컵에서 서독은 우승을 차지했다. 훗날 서독의 주장 베켄바워가 술회했듯이 동독 전의 패배는 서독에 보약이 됐다. 하지만 서독 축구는 동독 전의 패배로 생긴 오점을 영원히 지울 수 없었다. 서독과의 A매치에서 승률 100%를 유지하려는 동독 축구협회가 그 뒤 서독과의 경기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독이 된 뒤 밝혀진 얘기지만 '저먼 더비'가 끝난 뒤 서독 선수들은 동독 선수들과 유니폼을 바꿔 입지 못했다. 공산당원들로 구성된 동독팬들의 눈을 피해 2명의 동독 선수들만 라커룸 근처에서 유니폼을 교환하는 해프닝을 연출해야 했다. 두 명의 용감한 동독 선수들을 제외하면 이념의 대결이 '축구의 아름다운 전통'을 무참히 짓밟았던 셈이다.
 
  월드컵 예선 남북대결에서 양국 국기 대신 한반도기를 사용하자는 북한의 제안은 기본적으로 FIFA 규정에 어긋난다. 북한은 한반도기를 흔드는 게 6.15공동선언에 부합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6.15공동선언에는 '우리민족끼리'도 있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기본 정신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1974년 '저먼 더비'에서도 함부르크 경기장에는 동독 국기가 나부꼈었다.
   
 
  이종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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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08:55

깐느영화제 새우깡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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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08:52

우석훈. 여백과 행간의 의미

우석훈의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여백이 통하지 않는 사회. 하지만 우석훈은 외친다.

그래도 여백은 있다! 그것도 민중의 몫으로써의 여백이...




여백과 행간의 의미 : 이명박 대통령 취임에 부쳐



어렸을 때 이현세 야구 만화 중에 "이 한 번의 스윙으로 죽어도 좋아"라는 표현이 있었다. 물론 이 슬프게 살다가 간 아버지는, 정말로 홈까지 질주하다가 정말로 공을 머리에 맞고...

요즘은 생각이 좀 다르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된다.

좌파로 세상을 살다보면, 턱, 숨막히는 경험을 우파들보다는 더 많이 하게 되고, 도저히 이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좀 지난, 10년쯤 전의 일이다. 대형 작업장, 그러니까 정말로 큰 공장에서 인기 강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LG, 삼성, 그런 데에 안 간 데가 없을 정도로 정말로 회사에서 부탁 받아서 강의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 한 번에 대충 200만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그 때는, 숨이 막힌다는 생각을, 오히려 하지 않았다.

환경관리 사례, YS 정부에서의 환경 대응, 뭐 그런 얘기들을 했었는데, 얘기해야 할 목표와 범위가 뚜렷해서, 숨 막힌다는 생각까지는 안했다.

그리고 10년쯤 지나, 큰 노조들에서 생태주의 강의 부탁을 받았는데, 솔직히 숨 막혀서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고, 도대체 없는 시간 쪼개서 서로 얼굴 보고 있는데, 무슨 얘기를 해야 그래도 서로 시간이 아깝지가 않을까...

그렇게 10년이 넘게 지나다보니까, 이제 강의나 특강이나, 다 무서워서 못하겠다.

배 내밀고, 어디 한 번 떠들어보라... 이게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사회 전체가 좀 그런 것 같다.

꼭 필요한 강의입니다... 물론 준비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얘기하는데, 정말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대중강연은, 안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가끔 깨지기는 하지만, 지킬려고 한다.

내가 해 본 것 중에서, 10대들 앞에서 얘기하는 게 가장 힘들다. 특히나 나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편이라서, 더 힘들다. 요령이 조금 필요할텐데, 아직은 그 요령이 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여백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 고민을 해보게 된다.

글에서는 이것이 '행간'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대화에서는 이것이 여백의 의미가 된다.

니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알지만, 그 얘기를 직설법으로 잘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또 기절초풍한 방식으로 행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미리 다 알 수 없으므로, 자꾸만 여백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행간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얘기는 줄이고, 행동을 많이 하는 편이 낫기는 하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정책'은 좀 줄이고, 정부 조치도 좀 줄이고, 사람들이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이 낫기는 하지만 말이다.

신문이 많은 사회는 거꾸로 여백이 많고, 행간이 많아진다. 어수선하고 떠들석한 것 같지만, 혼자 생각해보거나 조용히 독백하는 순간이 많을수록 여백이 많다.

그런 사회는 속이거나 지배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을 했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취직과 사회의 행렬에서 밀어뜨려 죽이겠다는, 정말로 여운없는 무서운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파들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좌파들이 견제를 하는데, 이명박이 만들고 싶은 사회는 우파들만 남아있고, 좌파들은 씨를 말리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것 같다.

불행히도, 그런 사회는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서 그렇고, 사회는 여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후기구조주의자들이 나중에 썼던 용어로는, marge de liberte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게 이런 느낌과 좀 비슷하다.

선택지가 너무 없는 답안지를 이명박은 우리에게 들이민다. 경부운하 아니면 기업중심 사회 아니면 "영어만..." 사회. 그 어느 것을 선택해도 지옥인데,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그 세 개가 동시에 구연된다.

참, 다른 선택지가 너무 없다.

이 선택지의 결론은, "능력 없으면 죽으시라" 되겠다.

그런데 별로 잘나 보이지도, 별로 도덕적이지도 않아보이시는 분들이, "내가 부자인게 좀 어때서"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정책과 좋은 사회는, 여백이 많고, 선택지가 많은 사회이다. 가뜩이나 노무현의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선택지가 줄었는데, 이제 남은 건 세 개의 선택지 밖에 없다.

그래도 여백이 있다... 부동산 투기라는. 그러한 사회적 여백의 작동하면서 만들어낼 사회는 부도덕하고, 부패한 사회라는 점에 있다.

"권총 한 자루 모델"이라는 게 심리사회학에서 사용된다. 공포가 내재화된 사회에서, 독재자는 그 내재의 물질적 실현이 될 권총 한 자루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결국 온 사회가 총으로 협박하는 무서운 사회일라도, 모델 상으로는 독재자가 가지고 있는 단 한 자루의 권총 만으로도 모두를 협박할 수 있고, 그렇게 공포를 내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마나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여백은 한국에서 민중의 몫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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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8 20:47

주절거리기.

녀석들에게 퐁당 빠질 날이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방금 작년 녀석과 통화를 했다. 그저 목소리만으로도 반가운 작년 녀석들을 벌써 잊으라 하는 올해 새학기 구성.
또다시 3학년을 맡았고, 작년보다 5명이나 늘어 39명이라는 막강 인원을 통솔해야 하는 부담은 벌써 빠방. 녀석들은 알까? 담임들이 이렇게 새학기 전 부담백배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건, 작년 녀석들에게 준 잔정을 떨구고 새로운 녀석들에게 새롭게 쌓아가야 할 또다른 정. 그저 마음이 너무나 착잡하다.

처음 만나는 이는 누가 됐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간만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 하는 걸 보면 나도 참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교직 7년차에 접어드는 지금, 베테랑이라는 소리도 들을 만 하고 나름 교육철학도 서 있고, 통솔력과 지도력도 갖추었다고 혹자는 말할지 모르나 여전히 신규 때 아이들을 만나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설레이는 이 마음. 신규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아쉬움이 그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




..................



요 며칠 영화를 두편이나 봤다.
'말할 수 없는 비밀' 그리고 '어톤먼트'
하나는 불법다운로드한 파일로,
다른 하나는 막내리기 전 부랴부랴 달려가 본 영화.

둘다 음악이 맘에 들어 후딱 스톤방송을 만들어 버렸다.

먼저 말할 수 없는 비밀.
주걸륜이라는 주연겸, 감독겸, 각본에 음악까지 맡았다는 천재 엔터테이너.
한국의 김주승을 얼핏 닮은 어린 외모에 피아노를 두들기는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본 것 같다.

아름다운 배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러브스토리.
그 중심엔 시간을 담보로 한 은밀하고도 위험한 사랑이 있다. 다소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일만큼 아름다운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어톤먼트.
2차 세계대전전후를 기점으로 영국에서 이루어지는 위험한 사랑이야기.
충분히 위험하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랑이었지만, 먼 훗날 속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잘못된 과거. 그로 인해 뒤틀린 영원한 헤어짐. 하지만 이 영화는 모두에게 속죄의 기회를 주며 해피앤딩으로 마감하고 있다.

둘 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지만, 공통점을 구지 찾는다면 영화를 돋보이게 만든 음악의 화려함?



다음은 이문세에게 많은 곡을 선사했던 고인 이영훈을 기리며 방송을 만들까 한다. 사전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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