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에 해당되는 글 67건
- 2008/10/12 인생을 다시 산다면 - 나딘 스테어
- 2008/10/12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 2008/10/03 양평 유명산에 다녀오다.
- 2008/10/01 강의석. 우리 사회의 이단아?
- 2008/10/01 Working Poor. 우리에게 그 끝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좀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 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시간을, 하루하루를
의미 있고 분별 있게 살아가는 사람의 일원이 되리라.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러한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 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이 순간만을 맞으면서 살아가리라.
나는 지금까지 체온계와 보온물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무리 중의 하나였다.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장비를 간편하게 갖추고 여행길에 나서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 꽃도 많이 꺾으리라.
나딘 스테어 [85세, 미국 켄터키 주]
If I Had My Life To Live Over
Nadine Stair
I'd dare to make more mistakes next time.
I'd relax, I would limber up.
I would be sillier than I have been on this trip.
I would take fewer things seriously.
I would take more chances.
I would take more trips.
I would climb more mountains and swim more rivers. I would eat more ice cream and less beans.
I would perhaps have more actual troubles, but I'd have fewer imaginary ones.
You see, I'm one of those people who live sensibly and sanely hour after hour, day after day.
Oh, I've had my moments, and if I had it to do over again, I'd have more of them. In fact, I'd try to have nothing else. Just moments.
One after another, instead of living so many years ahead of each day.
I've been one of those persons who never goes anywhere without a thermometer, a hot water bottle, a raincoat and a parachute.
If I had to do it again, I would travel lighter than I have.
If I had my life to live over, I would start barefoot earlier in the spring and stay that way later in the fall.
I would go to more dances.
I would ride more merry-go-rounds.
I would pick more daisies.
'일상으로의 초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생을 다시 산다면 - 나딘 스테어 (0) | 2008/10/12 |
|---|---|
|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0) | 2008/10/12 |
| 양평 유명산에 다녀오다. (0) | 2008/10/03 |
| 강의석. 우리 사회의 이단아? (0) | 2008/10/01 |
| Working Poor. 우리에게 그 끝은? (0) | 2008/10/01 |
| 7일간의 음악축제 - 당신과 나, 소리로 통하다 (0) | 2008/09/21 |
나혜석.
20세기 초의 개화문명 속에서 조금의 교육을 받은 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만큼 남성중심 유교사회 속에서 변화에 발맞춰가지 못했던 우리나라 남녀에 관한 제도 및 관행. 시대의 격변기 속에서 이러한 생각은 일반민중들에게 어쩌면 사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부와 교육을 통해 시대의 고민을 민중과 함께 하지 않았을 그에게 이러한 생각은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한 고민이 나혜석 등장 이후, 첨단과 변화를 선도하는 지금(과연 그러한가?)에 이르기까지 해결되지 않았으니 만약 2008년 지금의 대한민국에 나혜석이 살고 있다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
아직도 이런 소송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말이다.
이혼으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에 휘말렸던 故 최진실씨가, 그 후 올해 초(겨우 이제서야), 개정 가족법이 발효되면서 아이들이 어머니 성을 따르게 한 일.
아직도 이런 기사가 등장하는 현실에서 말이다.
'공무원 채용시 군복무 가산점을 주자는 방안에 대해 여성계의 반발이 거세자 일부 남성 네티즌들이 여성에게도 군복무를 의무화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가운데 우리 국민 상당수가 여성들에게도 국방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2007.7.2 뉴시스)'
아직도 이런 판결이 나오는 현실에서 말이다.
'어느 프로 농구선수가 자신의 팬클럽에 속한 여성을 성폭행한 것에 대한 판결... 그 폭행, 협박, 위력에 준하는 강제력을 이용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A 씨의 저항을 쉽게 억압하고 간음한 것이어서 형법상의 성폭행은 아니지만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함으로써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에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에게 배상을 하라는 내용. (2007.10.9)
- 부연설명이 필요할 듯 : 결국 피해자가 성폭행사실을 인정받으려면 명명백백하게 동의가 없이 이루어진 행위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진짜 죽기 바로 직전까지 저항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같은 날 나온 신문기사처럼 3층 여관방에서 뛰어내리는 각오를 보여야 겨우 성폭행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가해자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 없으면 성폭행이고 뭐고 일단 동의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으니 처벌할 수 없고.참고-http://kr.blog.yahoo.com/sawoochi/1243025.html?p=9&t=2'
한국사전을 통한 나혜석을 조명해 본다.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표현(모母된 감상기)하며 모성의 신화를 깨뜨린 나혜석은 연이은 비판을 받는다.
'물론 임신이라는 것은 두려운 사실이요, 그리 편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결혼 그 자체부터 부인하고 회피하기 전에는 임신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원래 임신이라는 것은 여성의 거룩한 천직이니 여성의 존귀가 여기 있고 여성이 인류에게 향하여 이행하는 최대 의무의 한 가지인 것을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백결생/ 동명1923.2.4).
이에 나혜석은 바로 또 '백결생에게 답함'이라는 글을 싣는다.
'과연 마치 구름 속에 있는 양반에게 <너희는 왜 흙을 밝고 다니느냐>하는 비방을 받는 격이 되었다. 氏의 <임신이란 것은 그리 편한 일이 아니다>라는 일구를 보면 氏가 능히 알지 못할 사실을 아는 체하려는 것이 용서치 못할 점이다(나혜석/동명1923.3.18).'
하지만 나혜석은 아이들을 기르면서 진한 모성애를 경험한다.
'모성애로 인하여 얼마나 만족을 느꼈으며 행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과연 하나 기르고 둘 기르는 동안 지금까지의 애인에게서나 친구에게서 맛보지 못하는 애정을 느끼게 되었었나이다(삼천리 1934.9).'
남편과 함께 한 프랑스 여행에서 그녀는 진정한 미술세계를 경험하며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파국을 맞이한 건, 여행 중 3.1운동 33인 중 천도교 대표인 최린과 사랑에 빠지면서 이혼을 당한다.
그와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과거지사, 현 시사, 장래지사를 논하는 중에 공명되는 점이 많았고 서로 이해하게 되었사외다(이혼고백서1934.8).'
'결코 손을 대서는 아니된다고 한 과실에 손을 댄 것은 뱀의 유혹이었고 이브의 호기심이 아니었나. 나는 확실히 유혹을 받았었고 나는 확실히 호기심을 가졌었다. 우리는 황무(荒蕪)한 형극의 길가에서 생각지 않은 장미화를 발견한 것이었다. 방향과 밀봉(蜜蜂) 중에 황홀하였던 것이다(신생활에 들면서1935.2).'
나혜석은 작품활동을 하며 점차 입지를 넓혀 나갔고, 빼앗긴 것들을 되찾는 듯 한 기분이었으나, 집이 불타면서 잃게 된 자신의 수많은 작품들에 애타하며 파킨슨병을 앓게 되어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기 힘들어졌다.
나혜석은 당당했다.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상대자의 불품행을 논할진대 자기 자신이 청백할 것이 당연한 일이거늘 남자라는 명목하에 이성과 놀고 자도 관계없다는 당당한 권리를 가졌으니 사회제도도 제도려니와 몰상식한 태도에는 웃음이 나왔나이다... 이 어이한 미개명의 부도덕이냐.'
이후 최린에 대해 '정조유린'을 이유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같은 여성들의 따가운 시선은 나혜석을 더욱 힘들게 한다.
'필요없는 폭로는 악취미요 병적입니다. 더욱이나 당신은 사남매의 어머니로서 그 노출증적 광태를 버려야하지 않겠습니까?'
연이어 작품성에 대한 질타가 나혜석의 도덕성을 문제삼아 쏟아져 나오면서 그를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것을 출품한 작자의 사상이 의문이요. 출품을 하였더라도 그것을 진열하여 놓은 자의 심사를 모를 일이다. 우대를 한 것이냐? 모욕을 한 것이냐? 불미한 작품에 특선 딱지를 붙여서는 안될 것이다(매일신보1931.6.3).'
나혜석에게는 모진 세월을 당당하게 살아간 예술의 선각자라는 말 보다는 유명인사들 사이의 희대의 스캔들을 일으킨 인물라는 수식어가 아직도 남아 있다.
(나혜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blog.daum.net/msprint/12492534?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msprint%2F12492534)
'일상으로의 초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생을 다시 산다면 - 나딘 스테어 (0) | 2008/10/12 |
|---|---|
|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0) | 2008/10/12 |
| 양평 유명산에 다녀오다. (0) | 2008/10/03 |
| 강의석. 우리 사회의 이단아? (0) | 2008/10/01 |
| Working Poor. 우리에게 그 끝은? (0) | 2008/10/01 |
| 7일간의 음악축제 - 당신과 나, 소리로 통하다 (0) | 2008/09/21 |
나름의 분위기에 취해본다.
유명산 끝자락의 계곡의 소담한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이다.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나만의 사색의 시간, 그 순간의 사진들이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루시드폴의 이 음악과 함께 말이다.
얼마 전 카메라 사서 주야장창 찍어대고 있는 나만의 시선들...
DSLR도 아니고, 화려한 신제품도 아니지만, 나만의 기억에 화려함을 담아줄 동반자로 임명하노니.
너 T70. 기대에 부응해주는거지?
'일상으로의 초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생을 다시 산다면 - 나딘 스테어 (0) | 2008/10/12 |
|---|---|
|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0) | 2008/10/12 |
| 양평 유명산에 다녀오다. (0) | 2008/10/03 |
| 강의석. 우리 사회의 이단아? (0) | 2008/10/01 |
| Working Poor. 우리에게 그 끝은? (0) | 2008/10/01 |
| 7일간의 음악축제 - 당신과 나, 소리로 통하다 (0) | 2008/09/21 |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대광고에서의 종교의 자유를 위해 싸우면서 유명해진 이후,
'박태환, 너도 군대가'라는 글로 다시 한번~! 그리고 오늘은 누드 퍼포먼스를 벌여 또다시 많은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그의 화려한 말그대로의 퍼포먼스적 행각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마녀사냥식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이다.
나에게 그는 다소 과장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화려한 조명을 받기에 웬지모를 반감과 지지가 교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행각 속에서 느끼는 점?
표현되지 못하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되고 마는 우리 사회의 따가운 시선만큼은 그가 없애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곪아터지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답답한 우리네 일상에 하나의 물음표를 던져주지 않을까라는 기대하는 마음.
여러 의견을 싣는 것으로 글을 마감한다.
박권일씨가 주장한 내용이자, 위키피디아에 실린 내용이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중 한명인 박권일은 강의석에 대해 ‘영악한 처세가’와 ‘포스트모던한 주체’라는 두 가지 주체로서 비판했다. ‘영악한 처세가’로서의 강의석은 고등학교 때의 운동경력을 훈장 삼아 대학에 진학하고, 비주류적 방식으로 또래와의 경쟁우위에 서려는 어린 권력자적 모습을 심심찮게 보였으며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만만찮은 언론플레이 능력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포스트모던한 주체’에서의 강의석은 ‘세계평화’을 고민하다가 ‘개인의 행복’을 찾게 되었다는 중간 단계가 소거된 포스트모던적 행태를 보인다며 그의 행보는 정치사회적 공간이라는 고리가 잃어버린 행보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 아래는 김준성닷컴(http://kimjunsung.com/)에 실린 내용이다.
강의석이 내건 주장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야 어떻든 일단 강의석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넘어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의 생각에 대해 이런 저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뭐 괜찮습니다. 그런 토론을 유도하는 것이 강의석의 의도인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튄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떤 주장을 하건 간에 젊은 사람들이 제발 강의석처럼 좀 튀었으면 합니다. 강의석한테 튄다고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좀 다른 애들도 강의석처럼 좀 나와라, 떠들어라, 너희들 하고 싶은 말 다 해라,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비판적인 의식을 키우지 못하고 그저 국가와 자본이 씌워놓은 굴레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회는 얼마나 비극적인가요.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얼마나 많은 20대 유권자가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한지 아십니까? 저는 그런 20대의 무비판적이고 체제 순응적인 사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할 때 가끔 끔찍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다른 청년들에 비해 강의석은 얼마나 건강한가요. 살아 숨쉬고 있는 모습이 팔딱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나요?
강의석처럼 튀는 젊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사회는 더 풍요로워질테니까요.
다음은 오늘 삼성동에서 있었던 국군의 날 시가행진 도중의 퍼포먼스 현장.
다음은 강의석군이 박태환에게 보낸 편지.
난 자칭(!) ‘영화감독’ 강의석이야. 비록 내 영화는 CGV에서 두 번 상영되고 막을 내렸지만, 2009년 2월 완성될 블록버스터 다큐 ‘군대?’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예정이지. 그렇게 되면 올림픽 메달리스트처럼 ‘국위선양’의 이름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그 혜택을 거부하고 감옥에 갈 생각이야. 그로 인해 1년 6개월 동안은 영화를 못 만들게 되고 또 혹시 모르지. 감옥에서 광우병 쇠고기 먹고 뇌송송 구멍탁 죽어버릴지.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22명이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어. 5만 달러의 포상금, 죽을 때까지 매월 100만원 이상의 연금이 주어지는 것과 동시에 말야. 태환아, 너는 한국 야구가 세계 정상이 되는 순간을 지켜봤니? 난 ‘한국에서 어떻게 군대를 없앨까’ 밤샘 회의를 하던 중,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야구 금메달”이란 문자를 받고서야 알게 됐어(나도 팬이 많거든^^). 전승 우승하는 과정에서 승엽이 형은 ‘병역면제브로커’란 별명을 얻었고, 대호 형은 “아무래도 병역혜택이 걸린 준결승이 더 떨렸다. 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젊은 선수들은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밝히며 기뻐했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노력해서 딴 메달이 ‘징병면제’란 이름으로 선수들의 공적을 위한 하사품이 된다는 거야. 군 면제를 서비스로 받는 올림픽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로마시대 상대를 죽이면 자유민으로 풀어주는 노예 검투사가 떠오른다고 할까. 게다가 무엇이 국가의 명예를 높이는 것인지 그 ‘기준’도 불분명하고, 설령 국위선양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병역특례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없어. 일반인보다 전투력이 몇 배 센 태권도 금메달리스트가, 힘을 써야 할 군대에서 빠진다니 말도 안 돼!
헤어살롱에서 ‘GQ’ 8월호를 보니 네 친구 원더걸스가 나오더라. 해이해질 때마다 진영이 오빠가 바로 잡아준다며, “군대도 아닌데 좀 ‘빠지면’ 어때요?”라는 질문에 “아니에요. 군대만큼 중요해요”라고 답하던걸. 그걸 보고, 군대 자체가 중요한 조직과 직무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고, 그것이 일상적으로 용인되는 우리문화를 생각하면서 머리 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어 (그래도 소개해 주면 감사할게^^;).
군대? 넌 군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난 폭력을 막기 위함이란 이유로 포장된 군대로 인해 이 세상에 더 많은 폭력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평화를 위해서는 전 세계에서 군사제도가 사라져야 하고, 그 변화를 위해 나와 친구들이 군대 대신 감옥 가기 100인 캠페인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18명이 모였는데 네가 19번째 사람이 되어, 10월 1일 국군의 날에 “비무장은 아름답다!”는 누드 시위를 함께 해 보지 않겠니?
“잘생긴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는 헌법 조항이 있더라도 그 누구도 너와 나를 죽일 수는 없는 것처럼, 헌법 앞에 사람이 있지. 그런데 헌법도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어. 수많은 청년들에게 원치 않는 병역의무를 강요하는 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를 무시하는 거고, 올림픽 선수와 일반인을 차별하는 것은 헌법 제11조 ‘법 앞의 평등’을 깨버리는 거지. 태환아, 공익요원들이 20만 명이나 되어야 하는 이유를 너는 아니? 툭 까놓고 내가 2년 군대에 있었으니 너도 2년 낭비해야 한다는, 병역특례고 뭐고 태환이 너도 군대 가고, 여자도 군대 가라는 푸념 아닐까? 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내 소중한 삶을 낭비하기 싫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도 소중하지만, 나도 딱 너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는 거. 단지 그거 하나야. 참, 일촌신청 했는데 받아주렴 ^^ 술 고프면 문자 하나 보내고~♬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강의석군에 대한 내용이다.
강의석은 대광고등학교의 학생이었으나, 2004년 6월 학교가 학생들에게 개신교 예배를 강요하는 데 반발하여 시위를 한 이유로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이에 강의석은 학교을 상대로 퇴학 처분에 무효 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이후 그는 8월 11일부터 9월 25일까지 단식으로 투쟁했고, 학원은 예배선택권을 보장하기로 했다. 2004년, 그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2005학년도 수시모집에 합격했고, 2005년 1월 퇴학 무효 소송에 승소함에 따라 합격이 최종 결정되었다. 2005년 10월, 강의석은 대광학원과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종교 활동을 강요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007년 10월 서울중앙지법은 학교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인정하며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고의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2008년 5월 9일, 항소심에서 고등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학교 측의 손배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7일, 강의석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후의 행적 2005년 9월 강의석은 한국권투위원회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권투선수가 되었음을 밝혔다. 이후 2008년도 1학기를 휴학하고 사람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며 택시운전사를 했으며, 4월말부터는 호스트바에서 일하다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한 권투를 하다 머리를 다쳐 징병검사에서 공익판정(신체등급 4급)을 받았다.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군대의 불필요성에 대해 논하다가, 《대학내일》에 그와 관련된 글을 기고하며 병역특례를 받은 수영선수 박태환을 언급하며 논란을 이끌었다. 현재 다큐멘터리 《군대?》를 제작 중이다. 이후 건군 60주년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 군대폐지를 주장하며 길거리에 알몸으로 뛰어들었다가 진압되었다
- ↑ '특정종교 강요' 고교생 1인시위. YTN.
- ↑ '종교자유' 1인시위 고교생 제적. YTN.
- ↑ 김태형, 이계덕. 강의석군 46일째 단식 풀었다 학내 종교자유, 예배선택권 보장 받아. 오마이뉴스.
- ↑ 김남일. 강의석군 퇴학처분 무효판결. 한겨레. 한겨레신문사.
- ↑ 정홍민. 강의석, 종교자유 침해 손배소. 경향신문. 경향닷컴.
- ↑ 김백기. ‘종교 자유’ 주장 강의석씨 손배訴 일부 승소. 문화일보.
- ↑ 강의석군 “이번엔 세계챔피언이 꿈”. 경향신문. 2005-09-19.
- ↑ 서울대 휴학 택시모는 강의석씨. 매일경제. 2008-03-25.
- ↑ 가 나 종교자유 외쳤던 '대광고 강의석', "병역 의무 왜곡된 것": 종교자유 선봉에서 택시기사, 그리고 호스트바에서 일하기까지…. 조선일보.
- ↑ 가 나 김다슬. “미친듯 헤매도 내 뜻대로 사는 행복을 위해”. 경향닷컴. 경향신문사.
- ↑ 강의석. 태환아, 너도 군대 가. 대학내일. 내일신문사.
- ↑ 김정우. 강의석 '군대' 논란화 성공, 안티카페도 등장. 머니투데이.
- ↑ 블로그 속으로-영약한 처세가 경향신문, 2008년 04월 30일
'일상으로의 초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0) | 2008/10/12 |
|---|---|
| 양평 유명산에 다녀오다. (0) | 2008/10/03 |
| 강의석. 우리 사회의 이단아? (0) | 2008/10/01 |
| Working Poor. 우리에게 그 끝은? (0) | 2008/10/01 |
| 7일간의 음악축제 - 당신과 나, 소리로 통하다 (0) | 2008/09/21 |
|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0) | 2008/08/21 |
KBS스페셜 Working Poor편을 보면서 든 생각.
우리나라만큼 힘든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최악인 나라는 없구나.
10만원 수당을 더 벌고자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하며 버는 돈은 9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진 부업들로 그녀가 자는 시간마저 빼앗아가며 힘들게 일하고 남는 것은 긴 한숨과 함께 이어져 나오는 카메라 앞에서의 한맺힌 울음소리였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을 일본, 미국, 덴마크와 비교하면서 점점 뚜렷해지는 부당함에 치를 떨게 되더라.
덴마크에서는 비정규직 청소부 아저씨가 정규직 사무직원보다 더 많은 봉급을 받고 있으며, 딸에게 승마까지 가르치며 삶의 여유를 찾고 있었다.
어떤 차이인가?
무슨 이유인가?
언제까지인가?
며칠 전에 본 '염쟁이 유씨'라는 연극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내비추어 주더라.
염쟁이로 맥을 이어오던 유씨가 아들만은 그 길을 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객지로 내보낸 후, 그 아들이 고공투쟁을 벌이다가 자살로 한맺힌 절규를 표현하는 모습이 나온다. 작은 연극에서조차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표현하려는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다.
왜 우린 바꾸려 하지 않는가?
왜 우린 생각을 애써 외면하는가?
왜 우린 체념과 한숨에 지친 삶을 쳇바퀴에 내맡기는가?
루시드폴의 이 노래가 귓가를 맴돈다.
어느 문닫은 상점
길게 늘어진 카페트
갑자기 내게 말을 거네
난 중동의 소녀
방안에 갇힌 14살
하루 1달러를 버는
난 푸른빛 커피
향을 자세히 맡으니
익숙한 땀
흙의 냄새
난 아프리카의 신
열매의 주인
땅의 주인
문득 어제 산 외투
내 가슴팍에 기대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네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난 사람이었네
공장 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어느날 문득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워킹 푸어(Working Poor)”
근로 빈곤층
◎ 방송일시 : 2008년 9월 28일 (일) 밤 8시, KBS 1TV
◎ 연출 : 김은주 PD / 글 : 신지현 작가
|
2008년 대한민국 최저임금 월 78만 7천 930원. 최저임금 노동자는 전체의 13.1%.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 200만 2천명. 소득 불평등, 양극화의 문제는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의 문제다. 대한민국의 저임금 근로자들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고물가 시대. 생계의 벼랑 끝에 선 워킹푸어들의 현실을 들여다 본다. |
1. 부지런한 가난뱅이 '워킹푸어(Working Poor)'
“대한민국에서 워킹푸어와 같은 저임금근로자들이
과거에 비해서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 KDI 유경준 위원
| 늦은 밤 지하철역. 오늘도 박연자씨는 아무도 없는 지하철역을 밤새도록 청소하고 있다. 그녀는 새벽까지 일을 하고, 퇴근 후 하루 종일 봉투를 만든다. 하루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부지런히 일 하지만, 그녀의 기본급은 78만원. 야간수당이 붙어 118만원. 전기료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통장은 언제나 바닥이다. |
![]() |
| 법원에서 일하는 청소미화원 유재숙씨와 함께 시장을 나서본다. 그녀는 장을 보는 내내 한숨이다. 물가는 날마다 오르지만, 그녀의 월급은 2년째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소비자 물가는 5.6% 상승. 워킹푸어들은 임금만으로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힘들어진다. |
![]() |
2. “비정규직 대국” 대한민국
우리가 하루에 지나치는 비정규직들은 얼마나 될까. 회사원 김 씨가 출근길부터 지나치는 비정규노동자들을 집어봤다.
아파트 경비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사무실 청소원, 파견업체 소속의 동료직원, 택배서비스까지. 비정규직 비율 53%의 대한민국은 OECD 최고수준이다.
![]() |
“공부를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밤을 새야 하는 일이다보니 잠 오고 이런 게 문제죠.”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
| “제가 IMF 터지고 나서 택시운전을 하는데 그때보다 지금 훨씬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에 7-80만원, 내년부터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회사택시 운전자들 | ![]() |
3. 세계적 고민거리 ‘워킹푸어’
![]() |
지난 8월 독일에서 열린 3차 린다우 경제학 학술대회. 올해의 주제는 임금격차 확대와 소득불평등 심화였다. 학자들은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과 그에 따른 경제적 영향에 대해 토론했다. 저임금 노동자문제는 여전히 세계적 고민거리이다. |
“아무리 일을 해도 편하게 살 수가 없어요. 좀 더 생활자의 입장에 서 주었으면.”
- 일본의 한 비정규직 노동자
지난 6월 일본에서는 일명 ‘묻지마 살인’이라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한 비정규노동자가 지나던 행인 16명을 무차별 살상한 것. 하지만 일본 내 많은 젊은이들은 그 노동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입장을 보여 충격을 주고 있다. ‘1억 중산층 사회’의 자부심이 넘쳤던 일본. 소득격차와 워킹푸어 문제는 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4. 미국의 생활임금제도
![]() |
생활임금보다 더 적은 최저임금만 받았으면, 아마 먹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로 노숙자가 되었을 것 같다. - 스쿨버스 도우미 드니즈씨 미국 볼티모어에서 만난 스쿨버스 도우미 드니즈씨. 그 곳의 최저임금은 시급 6달러 55센트지만 그녀는 생활임금의 적용으로 9달러 55센트를 받고 있었다. 그녀의 생활은 아직도 어렵지만, 생활임금제가 없었다면 그녀는 노숙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워킹푸어’ 그들의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을 위한 노동이지, 노동을 위한 인간이 아닙니다.
노동은, 노동의 주체인 인간의 존엄성 최우선 척도로 판단해야 합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81년 노동 칙령)
'일상으로의 초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양평 유명산에 다녀오다. (0) | 2008/10/03 |
|---|---|
| 강의석. 우리 사회의 이단아? (0) | 2008/10/01 |
| Working Poor. 우리에게 그 끝은? (0) | 2008/10/01 |
| 7일간의 음악축제 - 당신과 나, 소리로 통하다 (0) | 2008/09/21 |
|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0) | 2008/08/21 |
| 동두천락페스티벌...젊음과 열정을 토해내다. (0) | 2008/08/17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Prev